태극기의 의미

 1. 

 조약을 맺은 조선이 자신들의 식별기를 만들어야 함을 깨닫고 만들었다.

 '국가'라는 개념을 처음 인지하게 해준 물건. 그냥 깃발. 



2. 

 대한제국의 깃발. 근대국가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성리학적인 정체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민족주의적 구심점, 혹은 왕가의 구심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고종의 장례 이후 그 연장선에서 사용된 것은 태극기가 대한제국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시 태극기가 왕조의 상징인가 민족의 상징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

 


3. 

 하지만 3.1.운동 이후 태극기 자체가 반정부적인 측면이 강해졌고 이에 따라 그 자체로 독립을 상징하는 의미로 굳어졌다. 

 확고한 공화주의자들. 특히 좌익계열에서는 태극기를 대신할 물건이 있다면 쓸 이유는 충분함. 다만 상징성이 없는게 문제. 



5. 

 독립 이후 태극기는 여전히 조선을 상징. 그러나 대한제국이 부활될 이유는 없었다.

 해방 이전 일본의 지배에 친숙해진, 그리고 태어나보니 이미 일본인이었던 조선민중들에게 태극기는 위험한 물건이며 불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독립을 보장해주는 강대국 미국의 깃발과 나란히 걸린 태극기는 그 자체로 조선이 미국에 의해 안전히 보호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안보'의 의미를 갖게된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에게 태극기는 태생부터 성조기와 한 쌍이다. 



6.

 동시에 보수적인 모든 것을 청산하겠다는 '위험분자'들이 득세했다. 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깃발을 거부했으며 종교, 신분, 재산관계... 모든 것을 박살냈다. 이제 태극기가 안보라는 의미는 분명해졌다. 

 "과거 나카무라 순사랑 웃으며 인사나눈 사람, 아랫말 지주 다카하시네 딸 시집갈 때 돌린 모찌떡 받아먹은 사람, 창씨개명한 사람... 다 잡아갈 생각이냐!" 

 안잡아간다. 하지만 소문은 그랬다. 사실" XX사람이 **사람 다 죽인다"는 말은 거의 다 이런 식이다.



7. 

 1945~48년은 정말 이상한 해이다. 

 독립운동가가 탄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가 독립운동가이며 누가 부역자(속칭 친일파)인지 주장과 반박, 판결과 비호가 횡행했던 시기이다. 어제의 독립운동가가 부역자들과 손을 잡고 그를 비호하기도 하였으며, 아예 독립운동가로 둔갑한 사람도 있다. 독립운동 중 죽은 이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이 그 뜻을 계승하였고 그래서 자신은 독립운동의 계승자라고 외치는 자도 있었다. 이 때 소환된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이다. 


 이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이제 태극기를 들지않는자를 먼저 공격하면 된다. 

 그리고 반공이라는 기치는 태극기에게 하나의 옵션을 더 제공하였다.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성조기가 필요했다. 



8.

 라이베리아라는 나라가 있다. 

 성조기와 자신들의 깃발을 함께 흔드는. 성조기 든 놈들이 선민의식으로 갑질하던 역사가 있는 나라 말이다.

 증오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부디 많이들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프리카는 미개하니까 우리와 관계없다."

 "우리가 강간과 살육으로 뒤덮인 나라와 같게 여겨진단 말이냐"

 이딴 소리로 하지말고.


 역사 왜 배우나. 과거는 미개한데. 

 

(아. 우리 조상님들은 슬기로웠으니 슬기로움만 배운다는 놈들이 저 놈들이었지. 잊고 있었다. ㅋㅋ)


 여하튼  성조기 흔드는 거하고 직접적인 연관은 없긴해도 라이베리아 역사에서 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다산다사의 아프리카 답게, 강간당한 딸이 있는 집에는 그 형제도 있다. 

 그러면 딸을 강간한 집단들은 그 형제들을 의도적으로 징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른 집단을 짓밟을 '권리'를 준다. 

 내 누나, 내 동생이 당한 방식 그대로 그녀들에게 할 수 있다. 쾌감과 스릴이 넘친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역할을 그대로 쥐어준다. 그러면 최초의 가해자는 피해혐의를 벗는다. 

 그 누구도 가해자를 찾지 않는다. 


 복수보다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한다. 

 분명 본질적으로 맞으나 그 화해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것은 누구일 것 같은가.


그냥 제 레벨에서의 보수와 진보 인식에 대해 잡다한 일상

사실 일반적으로는 별거 없습니다. 일반적인 정의와 똑같아요.

'기본적'으로는
보수는 현 체제와 구조를 '되도록' 유지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이고
진보는 현 체제와 구조를 '되도록' 바꿔보려는 사상과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되도록'의 부분이 얼마가 되느냐에 따라 저 진영내에서 구분이 생기는거다... 뭐 그런식으로 뭉뚱거려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정도까지만 인식하고요.



다만 보수도 분명 변화를 추구하지 않느냐. 예를들면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추구한 것도 보수요, 노예제를 폐지한 것도 보수가 중심이었다. 종교의 차별을 없앤것도 보수이며, 보통선거를 실시하고 신분제에 맞서 자유의 가치를 높인 것도 보수다....
....세계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음.....



그러니까 그거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을거 같아요. 정치제도의 변화는 매우 큰 '변혁'아닙니까.

그러면 지금 한국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던가요? 
단지 '무조건적인 제도 유지'가 보수의 목표라면 대통령제를 왜 바꿉니까. ㅎㅎ 고로 그들이 말하는 변화는 꼭 목적처럼 말하더라도 '수단'이라고 생각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뭐가 됐든. 보수가 변화를 입에 올릴 경우는 특히 그렇다고봐요.
 

지금의 개헌은 역사적으로 보수가 많이 해온 '변화'의 한 용례입니다. 어느 시대나 문화권에서나 보수는 이런식으로 계속 변화해야 해요.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고 껴안고 소비계층으로 만들고... 
왜? 가장 '핵심적인 가치 = 안정에 대한 추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겠죠.

보수도 전쟁하지 않습니까?(물론 진보도 전쟁하고 말이죠) 그 전쟁이 안정과 균형을 만들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겠죠. 
전쟁이 만드는 '결과'가 그럴거라고 말하지만 사실 전쟁 그 자체가 안정과 균형일 가능성도 매우 높고 말이죠. ㅡ.ㅡa 생각해보니 메이지유신 이후 1930년대까지의 일본의 변화와 그 과정이야말로 보수들이 생각하는 개혁과 발전의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요새 화제인 계엄령같은 것도 그래요. 그 핵심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희생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 코어보수가 아닐까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해서라도 변화를 막아야겠다 고육지책이겠지만... 사실 이 분들은 보수 대열에서 도태될 위기에 놓여있는 분들이라 봐요. 


고로 보수 진보 양측의 변화는 모두 근본적인 가치를 유지하기위한 변화가 아닐까요. 
보수는 그 가치를 변하지 않게 하기위해 변화하고 
진보는 어찌보면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한것 같구요. 그래서 개념에 충실한 진보라면 정치구조상 필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민주당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구!"하는 의견에 일부 동의하기도 하고요. ㅋㅋㅋ 다만 진정한 진보를 학문적 순수성의 레벨까지 한계없이 추구한다면 아직도 한국에서는 당장 정당해체심판청원감이 되버리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ㅎ 아 이미 하나 해체됐나.






이어지는 내용

어떤 죽은 역사교육에 대해 역사감상 주절주절

1.

앙시앵 레짐에 대해 배웠습니다.
'구제도의 모순'이라더군요. 뭐가 모순이냐니까 전체 인구의 3%가 토지의 30~40%를 가지고 있으니 모순이라고 설명하더랍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금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가 가진 재산비율이 그보다 덜한까요?"

아이중의 하나가 말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성적이 좋은 아이가 못됩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답합니다. 

"원래 이런건 그냥 외워야 되는거야. 길게 일일이 따지고 생각하면 공부를 못해. 그 때는 왕정이라 나쁜거고 지금은 민주정이니까 괜찮은가보지."

"아. 진짜.... 역사는 이래서 싫다니까."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험 앞두고 쫙 훑고 빠르게 외운후 문제를 많이 풀어서 보강한다는 생각으로 하는게 훨씬 효율이 잘 나오니까."

"XX이는 그냥 시험공부 교과서만 훑어보고 90점대 나오던데?"

"걘 그냥 덕후니까. 걘 그래서 100점이 잘 안나오는거지."




2.
 
 물론 앙시앵 레짐은 단순히 그런 부동산적인 이유만으로 앙시앵 레짐인건 아닌 것을 이 블로그를 보는 분들은 거의 아시겠지요. 

 여하튼 앙시앵 레짐에 대해 말하려고 이런 말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세계사의 사건과 상황을 통해 '현재(!)의' 한국사회를 살펴보려는 시각을 대체 왜 차단하려는걸까 하는겁니다. 
 특히... 이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정말 심한 것 같습니다. '뭐가 더 미개하다.' '뭐는 우리가 몇 년을 앞선 역사다.' 불펜에 들어가보면 이런 것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역사는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아느냐가 아닐텐데 말이지요. 

 사실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사회교육과 연동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자율학기제로 인해 조금 빛바랜 감이 있지만 이 둘은 민주사회가 어떤 과정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 부차적으로 설명하려는 목적을 뚜렷이 하고 있지요. 

 하지만 과거 '열린교육'때도 느낀 일이지만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환경, 특히 인적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안타깝게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개념은 1차로 접하는 '한국사' 교육 과정에서 혼동되어 버립니다. 



3.

 저는 제 1의 교육기관은 학교지만 실상 더 강력한 장악력을 가진것은 미디어라 생각합니다. 
 교과서나 학회지가 뭐라 떠들어봤자 예능프로에서 한 번 특집한 것만 못하지요.

 역사가 과거에서 현재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용인되는 것은 지금 사회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아닌,
 단지 주적개념의 활성화에 불과하지않나.... 저는 그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지요. 
 만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민족을 제1의 가치로 보는가, 민주주의를 제1의 가치로 보는가 말입니다. 
 둘 다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민주주의를 제 1의 가치로 보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직결되는 역사적 가치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만.... 

 저는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TV미디어에서 제가 생각한 이 가치와 부합되는 방송을 본 일이.... 꽤 먼 과거의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예능부터 아예 진입이 없다가 드라마에서 사라지더니 시사프로에서도 사라지고 종내에는 뉴스에서조차 사라져갔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진짜 '국민'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에 소속된 통제되는 고분고분한 '백성'들 말입니다.
 
 근대화라는 개념을 야만으로부터의 탈피...라는 형태로 접근하는 그 시작에 어떤 집단이 있고 그 정점에 특정 미디어 집단이 있음은 이제는 의혹을 넘어 확신수준이 되어버렸고 말입니다. 
 


4.
 
 여하튼 그나마 세계사 전반과 한국사 근현대 파트에서 보이는 그 접점들은 어떤 벽에 가로막혀 확장되지 못합니다.

 대개의 경우 과거는 과거의 박제로만 남습니다. 단지 평가대상이 되는 관점이란 것은  그 박제들이 어느게 더 오래됐고 어떤게 더 가치가 높냐는.... 아니 얼마 정도가 나오겠냐는,...... 
 더 거칠게 말하자면 '서양코쟁이 님들'께서 "오우 코리아 원더풀"이라고 해주실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이냐가 주된 관심이 됩니다. 그게 그 박제들, 그 골동품들이 가친 유일한 가치예요. 
 매일마다 뉴스채널에서 특파원들이 전하는 뉴스가 그런 가치를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대다수가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대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깨너머로 본 것들이지만 여러 역사교육관련 토론들을 보면서 이러한 류의 개탄에 대해서도 보았고 그 분들의 행동을 통한 작지만 함께한 발걸음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실겁니다. 최근 그 발걸음들에 어떤 똥이 뭍었는지를. 
 그리고 그 움직임에 대해 어떤 딱지가 붙었는지를. 




5.
 
 아마 저는 이제 고구려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다민족국가, 다부족 연합체 고구려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못할겁니다. 

 그런 설명을 들어서는 헛갈리기만 할 뿐일테니까요. 어차피 서술형은 선생님이 말해준 것에서 토씨 하나 안틀리고 나올것이고 문제는 문제은행에서 나올겁니다. 

 아이들은 더 짧은 시간내의 요약. 더 정확한 유형분석. 적중도를 원하고 그건 부모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의문들을 부모에게 질문했을때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낀다는 반응도 보았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는 거 잘 압니다. 
 자기 의견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똘똘한 아이들. 규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어린 새싹들 말입니다. 
 아니 사실 그런 아이들.... 저도 봤습니다. 아니 얼마전에도 보았지요. 


 하지만 제 손에 닿는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그런 숫자도 거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건 그 아이들에게 너무도 괴로운 일이며 쓸데없는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도 그랬고 쭈욱 시골마을의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빠른 나이에 포기를 익히고 있는 아이들이지요. 만일 그 아이의 부모님들이 '감당'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면 괜찮겠습니다만.... 저는 아이들에게 '관점'을 이야기하는 일이 늘 두렵습니다. 





 작금의 촛불이 고마운 것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 
 적어도 역사 속에 묻혀진 '혁명'이라는 단어를 박제에서 조금이나마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요. 

 그럼에도불구하고 "그게 지금도 늘 필요한 가치다"라는 말을 하는건
아직도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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