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이 X같음을 느껴봐라." 잡다한 일상

1. 
 먼저 뜬금 난민 이야기로 시작해봅니다.
 얼마 전 제가 살고 있는 이 제주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음은 익히 알고 계실겁니다.
 상당 수가 나갔으며 일부는 아직 제주에 있지요.

 이 난민들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 비주얼이었습니다. 전부 젊은 '남자들'이었던 것이지요. 
 한낮이 되면 뉴스채널이나 종편에서 그렇게도 나와대던 우리에게 익숙한 난민의 비주얼이 아니었습니다. 
 포격의 후유증으로 실어증을 겪는 소녀 카밀라, 희귀병을 앓아 네 발로 기어다니며 학교를 다니는 고아소년 핫산이, 반군에게 강간당해 아이를 낳은 열 다섯 소녀 아이샤가 아니었던 겁니다.
 
 모금을 위해 '강자'인 남성의 모습을 지우고 '약자'인 아이와 장애인, 소녀 등을 통해 모금을 했지요. 그곳에 남성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어떻게보면 그 남성들이야말로 카밀라의 실어증을 만들고 핫산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하고 아이샤를 임신시킨 그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이 문제였을지 모릅니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찍은 사진, 영상들은 그 '가능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비주얼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공포'에 휩쓸렸죠. 공포의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진 것 없는 그들이 문화도 다른 한국에서 지낼 경우 일어나게될 마찰이 두렵다."

 이건 좀 완화된 표현이고, 지인 A모군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아 이슬람 애들은 사람도 쉽게 죽이고, 돼지고기 냄새만 맡아도 지들 모욕하는 줄 알거고, 여자들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강간도 쉽게 할거야. 걔들은 이교도에 대한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될거야. IS 애들 안봤냐." 

 뭐. 평소에 뉴스를 열심히 봐서 교양상식을 많이 쌓은 덕에 이러한 선견지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지식을 가르치고 계도해주시는 언론인 분들에게 감사를.

 A군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거 같다 했더니 실은 노예의 역사 만들면서 본 얘기였습니다. 흑인남성들이 농장을 떠나 '풀려날 경우' 백인 여성들이 겪게 될 잠재적 위협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흑인들은 농장에서 주기적으로 술에 취해 난교파티를 벌인다. 주인도 이 날은 특별히 얽매지 않는다. 다만 이들 모두가 성욕을 해결하는 건 아니어서 일부 흑인들이 농장을 탈주해 근처 민간의 여성들을 겁탈하고 돌아간다." .... 에? 그거랑 이거랑 같냐고요? 그건 과거의 '루머'고 난민남성들은 현재의 '사실'아니냐고요? 아닌데요? 
둘 다 사실 혹은 루머입니다. 둘 중 하나만 사실인 관계는 성립하지 않아요.


 여하튼.... A군의 표현에서도 과거 흑인들의 위협에서도 여성과 장애인, 아이들은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성인 남성'이 문제였죠. 항상.




2.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매매 합법화, 양성화를 여러 이유에서 지지합니다.
 집단 전체로 따졌을 때 성욕은 금욕만으로 통제되지 않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입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더더욱.
 아 여성인권이 문제라면 대체품도 좋습니다. 일본같이 AV레이블들의 폭력과 억압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양성화와 공론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쨋든 그 지지 이유 중 한가지가 저 '성인남성'의 문제가 되겠네요.
 통제된 환경의 성인남성들의 저 에너지가 모였을 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냥 추방이나 학살이라는 방법을 쓸 수 없다면 그 '가능성'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이미 농어촌 곳곳에 있는 외국인 집단 거주구역만 봐도 종종 드는 생각이예요. 지독한 남초거든요. 


 A군은 남성 인권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싫어하는 것이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시각"이지요.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결국 "이슬람 남성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봐도 된다"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정확히는 중동지역 이슬람을 말하는 거겠지만요.... 우리 동네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가운데도 이슬람 많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고요. 사실 우리는 서로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까놓고 정상적인 성관계냐 성폭행이냐를 구분짓는 것은 결국 '합의'와 과정의 문제고 이 '합의'에는 돈이 꽤 큰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돈은 소위 말하는 화대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이슬람교도 만수르가 성범죄자로 잡혀갈 확률, 집구석에서 이런 이야기로 타이핑이나 하고있는 한국인 무신론자 레드칼리프가 성범죄자로 잡혀갈 확률. 누가 더 높느냐를 따졌을 때, 당연히 제가 확률이 더 높겠죠. 물론 만수르씨도 그 '돈'이 문제가 되어 휘말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건 다른 문제겠죠. 


 실은 핏대를 올리는 남성들 상당수도 같은 남성들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끼고 있긴 한다는 소립니다. 
 이슬람 난민에게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큰 원인은 그들을 '우리와 같은 남성', 동질집단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겠죠. 
 '문명화되지 못한 무식한 집단'이라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고 말입니다.


 아 난민들이 들어와 일으킬 문화적 생태계 교란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저도 길거리 삽겹살집이 이슬람 혐오라고 시위따위 하고 있으면 당장 비난할 겁니다. 여기서 다시 확인할 것이 있는데 저는 철저하게 무신론자입니다. 대부분 이슬람 교도들이 제일 혐오하는 이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신론자라고 하지요. 

 




3. 

 주제를 좀 돌려서 원 제목에 맞는 이야기로 나가봅시다. 사실 난민이야기는 간단하게만 하려는 거였는데 길어졌습니다. ㅎㅎ
 
 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졌을 때, 가난한 하층민들이 부자들과 같은 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가난하고 불쌍하고 가엾은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냥 부자님들의 동정심과 자비를 바라며 불쌍하게 쓰려져 죽어갔을까요? 그럴리가 없겠죠. 

 "내 X같은 기분을 너도 한 번 느껴봐라!"라고 절규하는게 솔직한 심정이었겠죠. 내가 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잘먹고 사는 이들의 현실이라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예요. 
 내가 X같은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면 너로 X같은 기분을 느껴봐라!..... 그리고 진짜로 뒹굴게 되면 모두가 즐거울 거예요. 일부는 동정심을 느끼겠지만, 린치의 주동자가 저 자의 죄목을 소리높여 읽고 모두가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면 동정심이나 죄의식 따위는 심연으로 가라앉을 겁니다. 


 공포의 전염. 아니 X같음의 전염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취하는 가장 대표적인 '평등의 수단'입니다.





4.

 (이 글은 매우 프롤레타리아적 시각에서 쓰여졌습니다.)

 이 시대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비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하층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해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육장의 젖소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잡아먹기위해 울타리를 쳐둔 것에 불과하고 막상 그 울타리 마저도 제대로 쳐져 있지 않다고 말이죠. 

 관리자들이 남자들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이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저 편 울타리 너머에서 남자들이 종종 넘어와 잡아먹거나 괴롭히기 때문에 관리자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이 '울타리 너머'의 남성들을 방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좀 방조된게 있긴 했습니다. 
 간혹 관리자로 승급된 젖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똑같이 울타리 밖을 나서자 근엄한 관리자의 얼굴을 하려 합니다. 울타리 안의 젖소들은 그녀가 관리자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들 중 목소리 큰 일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울타리는 처음부터 남자들과의 경계에 쳐있지 않았습니다. 워낙 농장자체를 남자들이 휩쓸고 다닌 게 있지만 그 남자들도 결국 관리자들에게 그 때 그 때 붙잡혀 잡아먹힙니다. 다만 전에는 여자들의 가치가 낮아(비싸게 안팔려서) 좀 다치게 해도 내버려뒀는데 이제는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 뿐이죠. 몸값이 비싸졌으니까. 그 뿐입니다. 

 관리자들 대부분이 남자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울타리 안에 들어있는 건 결국 소입니다. 물론 한 울타리에 있고 관리도 잘 안되서 치받고 다치게 하는 존재인 건 맞는데, 어쨌든 잡아먹히는 건 암컷이건 수컷이건 매일 반입니다. 하지만 관리자는 일부 숫소들의 불안감이 암소들을 괴롭히는 것을 통해 해소되기를 원했고 숫소, 그러니까 남자들은 이를 당연한 권리로 알고 누려왔습니다.
 최종적으로 상당 수 여자들은 남자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관리자 그 자체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웃기는 건 울타리 안의 남자들 중 일부도, 이에 휩쓸려 이상한 의식에 사로잡혔다는 겁니다. 관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관리자가 관리자스럽게 한 행동들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공감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울타리 밖 관리자와 울타리 안 소라는 관계를 잊어버립니다. 

 그 놈들은 한가지를 잊고 있습니다. 관리자가 숫소들을 거세소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제 그들은 같은 남자가 아니게 될 것 입니다.

 확실히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둔감했습니다. "아니 왜 그 정도를 갖고 그 난리인거야?" "여자들은 공감이라면서 오버가 너무 심해."
 그러자 여자들은 말합니다. 
 "너희들은 다를지 두고보자. 이 X같음을 모두 함께 누려보자고."


 (이 글은 매우 프롤레타리아적 시각에서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내 안의 부르주아....관리자! 모드가 발동하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습니다. ㅋㅋㅋ)




5.
 요 근래 남초사이트 최대의 화두는 '무고죄'입니다.
 분명 무고죄는 무섭습니다. X같습니다. 당장 지하철이나 버스는 어떻게 타냐는 호들갑도 나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비웃습니다. 아무리 무고가 X같아도 성폭행이나 성추행만큼 X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X같음의 공유입니다.
 분명 사회정의를 위한 움직임이라 말하고 그런 의미에서 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X같음을 너도 느껴봐라는 심정으로 재벌들을 욕하고 
 공인이라는 핑계로 연예인들을 괴롭히고 별거 아닌 루머에 죽일 듯이 까고
 무고 정도야 여성들이 받아온 피해에 비하면 감수할만한 필요악이라는 비웃음과 반응은 
 
 ........
 공포의 공유.
 그저 X같음의 공유를 바라는 심리일지도 모릅니다.
 
 
 미러링이 그렇듯
 이 또한 사회적으로 꽤 효과가 있다는 점이 함정일까요. 옳고 그른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우리가 그들 사정까지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역사감상 주절주절

1.
인터넷 상에서 논쟁하다 자주 듣던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적'으로 규정된 상대에 대해 종종 쓰이던 논리(?)이기도 하죠.



"우리가 귀족(양반)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당시 일본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친일파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국내 외국인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재벌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남자(여자)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가 노인들의 사정까지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다."



왠지 이곳에서 '다수'가 된 것 같으면... 그들은 '우리'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이들을 하나하나 쫓아내지요. 

이것은 인류가 무한히 반복할 숙명과도 같은 것일까요?





2.
 사실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은 이해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해 줄 '이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음... 아니 이해를 못하더라도 최소한 외면은 할 수 없게 만들어줬죠.

 그들과 함께 '국민'으로서 살아야한다는 이상적인 이유.
 그들의 노동력이 나의 부를 지켜주는 토대가 되기때문에 그들의 건강이 유지되어야한다는 그런 직접적이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부엌일을 담당하는 아나이스의 위생상태가 집안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한다든가.
 아나이스는 깨끗하게 씻겼는데 아나이스 집이 더러워서 다시 병이 돈다든가.
 아나이스 집은 깨끗하게 만들었는데 아나이스네 상하수도 시설이 더러워서 다시 병이 돈다든가
... 하는 매우 무서운 이유.

 더 적절한 것은 빈부격차에 따른 현실적인 위협같은 것 말입니다. 
 넵. 위협 말이죠. 

 그래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해주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 전부터 다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구는게 좀 고까워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죠.

 다만 이런 해결방법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이해해 줄 필요가 없듯"이 "가난한 사람도 부자들의 사정을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가 되는 것이지요. 






3.
 문제는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고 타인과의 접촉이 극도로 늘어난 사회라는 겁니다.
 우리는 가정과 일과 타인까지 전부 이해해줘야만 합니다. '우리'라는 범위가 확장되면서 '타인'과의 경계도 증가합니다.

 인간의 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아니고 현대인들은 기술의 도움을 빌려 겨우겨우 '우리'를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부, 스마트폰, 카톡, 크게 보면 인터넷 커뮤니티, 페북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안에 타인이 생겨나고 타인안에 우리가 생겨나는.... 혼란스럽고 모호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별 얘기는 아닙니다. 프듀의 사쿠라를 좋아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는...아 이건 아닌가요^^ 그러면 젊은이지만 노인복지정책을 더 지원해야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가졌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노인이 되었을때 이러한 복지가 유지될 가능성이 낮은데 어째서 나는 노인복지를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든가 하는 따위를 말하는 거죠.

어쨌든 '우리'라는 동질집단을 규정하는 기준에 따라 저는, 여러분은 종종 "너는 누구냐"라는 정체성을 수시로 시험받게 됩니다. 여기에 전통과 사회변화라는 변수가 이 시험을 24시간 가동한다는 이야기고요. 아무리 증명을 해도 다시 수시로 요구받게 됩니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변화된 사회가 다른 답을 요구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라는 단어를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볼때마다, 그리고 제가 사용할 때마다 잠시 멈추고 고민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리'라는 단어에는 일반적으로 고려해봄직한 어떤 대상이나 가치가 누락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4.
 논리적 형평성.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비웃음당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 같습니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 해도 되고 어떤 식으로 대해도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접접이 없거나 앞으로도 없을 예정. 그들을 철저히 타자화, 대상화, 사물화하는 것이 가능했을때 말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던대로 현대사회에서 완전하게 모두를 만족시킬 분리는 어렵습니다. 아니 모두가 아닌 과반을 만족시키는 것조차 가끔은 어렵단 말이죠. 


 흔히 언론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인과 과거 일본의 식민통치사이의 관계로 소비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식민지 조선인과 그 후손인 한국인'이고 '저들'은 '일본제국정부와 그 계승인 일본정부'입니다만 보통 매치는 같은 대상으로 붙기때문에 심플하게 '한국인'인 우리와 '일본인'인 저들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프레임의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우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전쟁에서 성노예와 성매매가 일종의 보급개념으로 존재했던 것이 비단 일본뿐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고 (잘못없다는 소리 아닙니다.) 국가와 민족의 프레임을 벗고 이를 남성의 여성억압으로 보는 프레임이 나오게 된 것이죠. 
 즉 그간 쉬쉬하던 한국군의 (사실상)위안부와 군인들의 성매매, 이를 대하는 군부대의 프레임이 알려지면서 일부'여성'들에게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국가가 대상이 아니라 젠더를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전통적인 입장을 가진 남성들의 경우 이런 프레임의 전환을 맞았을때 매우 당혹스러운 감정을 갖게됩니다. 그래서 다시 '저들'을 구성하고 '우리'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네. 신분확인 말입니다. 너 여자냐? 음.... 혹은 좀 더 저열한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 신분확인은 여성들측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양측 다 신분확인을 통해 적들과 스파이를 색출하고 이념을 공고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실은 이 작업은 이전에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우리'끼리 있던거고 '저들'의 입장을 잘모르기에 잘 몰랐던거겠죠.




 논리적 형평성을 따진다는 것은 상대와 같이 살겠다는 겁니다.
 진영에 상관없이 '우리'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는거죠. 
 그들 사정을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아예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기 싫다는 시점에서 공생은 물건너간 얘기입니다. 아. 그냥 공생이 싫기때문에 논리적 형평성을 거부하는 거라는 말도 되겠군요.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구말마따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되겠지만 말이죠. 역시 공생의 최고 조건은 자본입니다. ㅎㅎ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마법은 인간사회의 속성상 수천년간 불가능한 일을 계속 가능하게 해왔습니다.
 과연 지금의 불통도 결국은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
이 글은 전부 다 이해(인정)해달라는 글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해(인지)하는 것을 피하지는 말아달라는 글이지요.

롤경기 보면서 치는 글이라 정신이 더 혼미.... 나중에 수시로 고쳐보겠습니다. ^^
퍼즈 뭐 이렇게 길어...

[중학학습만화] 4.19혁명(2), 제2공화국, 5.16 군사정변 기타등등 만화

한 장에 팍팍 담은,
그야말로 교재용.

[클릭하면 커집니다.]

그래요. 
한일협정 제2공화국때부터 추진한거 안다구요.
아는데 왜 이렇게 하냐구요? 
그래서 이 만화가 교재용인거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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