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윤리교육'을 싫어했을까 역사감상 주절주절

(경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
 먼저 역사상 교육이라는 것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거기서부터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걸 왜 나한테 설명함?" 하실만한 분들은 1 부분은 패스하시길 바란다. 뻔한 얘기인데다 꽤 터프해서 자본주의와의 관계같은 부분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갔으니


2.
 오랫동안 교육은 기득권 층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수단으로 기능해왔다.
 문자의 탄생이 그런 이유고 법의 존재도 마찬가지 이유다. 즉, 교육은 기득권의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일부는 그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하층민들에게는 신분을 지키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지, 제 분수를 알려주는 일과 동시에 금기사항들을 알려주는 일이 필요했다. 
 이러한 '교육'들은 문자를 통한 것이 아닌, 구술이나 체득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이후 중앙에서 국민교육을 실시하려하자 이를 지방사회의 연대를 붕괴시키려한다 하여 반발하는 경우도 여럿 목격되니 말이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고.

 즉, 하층민에 대한 문자의 보급은 전통사회의 구속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전통사회가 결속력을 유지한다면 문자는 딱히 필요없다. 쓸데없이 특정장소에 어린 노동력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미 국민교육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하층민에게 교육이란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영향력을 뺏는 행위로 여겨져 왔으니 확실히 부모입장에서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안할 수 있으면 안한다.

 예전에도 국민교육에 대해 말한 바 있으니 간략하게 말하자면, 국민교육은 철저하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시작되었다. 
 농촌사회가 붕괴되고 농촌인력들이 도시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소위 '상식'이라는 것의 전달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존 자기 가족끼리만 통하면 되던, 농촌사회에서 통용되던 상식은 하등 필요가 없고 같은 언어, 같은 사고, 같은 의식의 공유가 필요하게 되었다.

 거기에 군대의 문제도 있었다. 징병제가 활성화 되면서 교육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문제가 되었다.
 명령을 하달하고 문제점을 듣는 것, 대포나 총기의 구조와 사용법을 익히는 것, 해뜰때와 해질녘만으로 시간 개념이 구성된 이들에게 시간과 시각 개념을 익히는 것, 왜 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에 대한 사명의식을 기르는 것. 등등... 
 그래서 근대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 중 군장성 출신들이 많았던 것들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일단 말이 통해야 했다.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 사투리를 줄이고 천박한 말투를 없애 언어를 공유하는 과정. 그것이 '국어'이며 이는 동시에 국가 정체성과도 연결되었다. 

 간단한 셈이 통해야 했다. 일단 십진법이라도 알고 시계라도 볼 줄 알아야 했다. 그것이 '산수'다.
 
 가장 힘든 것이 전쟁터에서 '닥돌'할 수 있는 애국심과 정신력이었다. 동시에 사회에 돌아왔을 때, 새로운 아이를 낳고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며, 적절한 소비를 하고, 낳은 아이를 국가의 동력원으로 기꺼이 제공할 수 있는 있는 그런 애국심과 정신력. 

 그것을 위해, '바른 언어'라는 개념을 만들고, '바른 역사'라는 개념을 만들고, '바른 정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강조하지만 '바르다'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렇게 '국어', '국사', '국민윤리'라는 과목이 교육의 대상이 된다. 기본적으로 하층민을 대하는 교육적 자세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국어'가 높으신 분들이 쓰는 언어에 근접하기는 했으나 기득권층에게는 '라틴어', '프랑스어' 등의 외국어가 있었고. 또 자국말이라 해도 언어가 달랐다. 
 '국사' 역시 철저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하층민을 위한 책이라 '국민윤리'와 결합된 어떤 사례집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기득권을 위한 역사서는 별개로 쓰여졌으며 이것은 오랫동안 지배층의 친구였던 '철학'과 결합되었다. 현재 대부분 역사서라 불리는 소위 명저라는 것들은 이 쪽이다. 




3. 
 지배층에게 주어지는 것이 역사와 사회 교육. 즉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하는 자세가 필요한 교육. 철학 역시 역사 사회와 분리되지 않는다.
 피지배층에게 주어지는 것이 도덕과 윤리 교육. 
 윤리에 철학도 포함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초기의 도덕, 윤리 교육은 차라리 그 시조를 십계명이나 향약 등에서 뿌리를 찾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하고 싶다. 그 발전형이 국민교육헌장 같은 것. 실제로도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도덕 혹은 윤리 교과서에도 동서양 사상가들의 소개가 있긴했지만 강조되는 것은 반공, 호국, 윤리의식. 뭐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수업에서는 공리주의라는 것도 딱 필요한 만큼 해석되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개인의 희생"으로 해석되고, 당사자는 하지도 않았다는 "악법도 법이다"가 과거 오랫동안 수업시간에 등장했던 것은 그 말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구색맞추기라 할지라도 실린 것 만으로도 분명 사회학으로 가는 길잡이가 되어줬다는 것. 즉 배우는 내용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항상 딸린 해석이 문제였다. 어떻게보면 형식적이나마 그러한 원전과 개념들이 실린 것만으로도 향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대학시절, 앞서 말한 대전제에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까지 겹쳐져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윤리교육이 죽어야한다"는 전제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여기서 윤리교육이란 국민윤리를 말한다. 이후 혐오는 '국사과'로 넘어갔고 '국어'에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그게 '사회과'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에서 '사회교육'과 '윤리교육'은 서로 반대편에 놓인 관계였다. 그리고 그 후로 줄곧 교육과정에서 계몽적이며 도덕적이며 국가적인 냄새가 난다 싶은 것은 죄다 회피해왔다.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이 글은 나중에 생각날 때, 추가로 덧붙일 생각입니다.

[중학학습만화] 4.19 혁명(1) 미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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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밖에 안그려쓰요.
4.19 혁명으로 뭐하나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중학학습만화]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4), 6.25전쟁 기타등등 만화

4. 남북 정부의 수립, 반민특위, 농지개혁

5.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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