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환상이 깨지지 않기를

1.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가 97년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대학가에 소위 '운동권'이라는 자취가 남아있던 때입니다.

저는 그들이 싫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그 때의 모습들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입니다.
당시 쉰내나고 불편한 존재들이었던 그들.
투쟁을 노래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선배들로부터 투쟁가를 물려받으며 공감도 가지 않는 구호를 외쳐대는 그들이 싫었습니다. 
굳이 머리를 깎고 혈서를 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게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지도 않고 봐주지도 않고 봐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던 시대에서, 사람들이 체득한 나름의 생존법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앞으로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
언론이 지금의 평화시위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자랑할 수 없어도 시민의식은 자랑할 수 있게됐다면서 예찬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바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개같은 새끼들. ㅋㅋㅋㅋ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하는 종편의 개들.


왜 평화롭게 시위하겠습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불타오르는 촛불 하나가 곧 소리없는 총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덜 분노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시스템에 대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한... (아마도 최후로 보일지도 모르는)신뢰, 혹은 미련...같은 겁니다.

평화시위는 현재 한국의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최소한의 신뢰와 기대가 만든 겁니다. 
이는 87년 이후 우리의 30년 정치가 만들어 준 결과물입니다.
정치!의 결과물입니다.  

2002 월드컵에 대한 반성과 성찰
2008 쇠고기협상에 대한 반성과 성찰 
2016년의 촛불은 이것들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이 결과물의 본질에 대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성숙하고 고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착각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완성된 도구이며 분노와 인내 사이의 절충에서 나타난 결정체입니다. 
약간의 돌출행동일지라도 부역자 언론들에게 어떻게 노출되는지 알고있기에, 단 하나의 꼬투리(!)라도 주지 않기위한 인내의 결정체입니다. 욕망의 절제입니다. 


만일 놀랄정도의 집단지성과 통제로 유지되고 있는 이 '단 하나의' 요구에 대해 정치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헌정수호라는 말은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 헌정이라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대답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촛불이 그냥 아름다운 야경의 일부로 느껴진다면, 그냥 문화행사로 느껴진다면,
결국 같은 방법으로 끌어내리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환경이 변하면 생존수단도 대화수단도 변하는 법입니다. 

아직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가,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을 때, 하는게 좋을겁니다.
화가 덜나서, 사람들이 '잘 통제되어서', '민주시민이라서' 평화시위가 진행된다는 그딴 소리 집어치란 말입니다. 
북쪽의 김정은까지 항시 등장하는 지금의 넷개그들의 기저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지 정녕 이해못하는 높으신 분들. 

"너네 평화시위 계속할거잖아? 민주시민해야지?"
"어차피 너희 아무것도 못하는 것들이잖아 ㅋㅋㅋㅋ" 
따위로 들리는 행동들을 계속 하고있는 모양인데 

 음......
사실 가만놔두면 정말 아무것도 못할지 모릅니다만.... 
또 저런 말 만큼 동기부여를 일으키게 하는 것도 없단 말이지요. 

안그런가요?





3.
 현재 새누리당 의원들의 행태는 친일전력자들의 그것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대중들도 슬슬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위대 행사 참여니 한일군사정보협력이니 그런 것 때문만이 아니란 말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딱 45년 8월 16일의 친일파들이지요. "얘가 진짜 친일파고 나는 온건세력임" 이라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똑같고 '반공'이라는 탈출구를 찾았듯이 '개헌'이라는 탈출구를 찾는 모양새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이해못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개화기 친일파, 그리고 심지어 한일병합기의 친일세력조차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사회가 나갈 미래를 거기서 찾았는지도 모르지요. 이는 1920년대 조선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라 보고요.
 
 하지만 방향을 오판한 것과 그곳에 빌붙어 이권을 받아먹으려 한 것은 분명 다릅니다. 친일세력의 진짜 문제점은 친일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삼고 조선인 내의 우두머리, 혹은 준일본인(조선인 내에서)이 되려 했던 데에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들에게 나름 온당한 명분이 없었던게 아닙니다. 종군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부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었습니다. "차별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다." 일본의 승리로 끝났더라면 이로인해 적어도 목소리는 낼 수 있게 됐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 관점은 지극히 기능론적인 이야기죠. 그 전쟁이 온당한 전쟁이었나, 그게 조선인들이 같은 조선인들을 전쟁으로 내몰면서, 그것도 여태까지 조선인 등위에서 쳐 자빠진 부역자들이 할 소리였나... 갈등론적인 관점에서 저런 소리는 치가 떨릴일이지요. 뭐 한국의 교과서가 이제는 일제시대 포함해서 ALL 기능론으로 전환하려하는 시국이니 이해들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얘기가 빗나갔습니다.....

 과거 이야기를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단의 어떤 선택도 '나름'의 그럴듯한 합리적인 논거는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자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극단적으로 가르면 위정자들의 고민은 항상 거기서 거기이며, 피지배자들의 고민도 항상 거기서 거기지요.
 그런 세계관으로 인식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새누리당의 행태가 그들의 무엇과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단순한 깃발차이라는 생각은 안드시는지?




4.
 이 글이 적어도 앞으로의 1년간, 마지막 정치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디 촛불의 환상이 깨지지 않기를.
 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도 깨지지 않기를.

게임만화를 디스이즈게임에 안올리는 이유에 대해 게임이야기

아마... 거기가 2012년 이후로 업뎃이 없을건데요.
마지막에 오타쿠를 위한 나라는 없다(3)을 올리지 않고 종료해버렸더군요. 
.....

이거 참
개인적으로 곤란하게 되었는데요.결론적으로 제 아이디는 이제 못씁니다.
비번을 분실했는데 실명 확인을 해도 안되거든요. 
2013년부로 제 개인정보가 모조리 바뀌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입니다. ㅜ.ㅜ 
덕택에 그 이전에 가입한 모든 곳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심지어 찾아가 본인확인까지 해가면서 이어받거나
혹은 그조차도 하지못해 기존 계좌나 계정을 폐기하고 새것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한 편만 올리기 위해서 운영자 분께 문의를 드리고
(4년넘게 업로드를 안햇는데...ㄷㄷㄷ)
새로 아이디를 만들고 다시 연재계정과 링크하는게....

다시 그곳의 연재를 한다면 모를까 
쉽지는 않을것 같네요. 


여하튼 찾으시는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제 불찰로 인한 일이니 뒤늦게라도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게임만화는 두 개 정도의 콘티가 있는데
솔직히 제가 봐도 별재미가 없어서, 그리고 시류에 맞지 않아서.... 
작업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다루는 시대를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제 거의 웹으로 만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지극히 제한적인 정서를 다루는 만화인데다, 점점 응답하라식의 추억코드를 쓰는데 있어
저 자신도 자괴감이 들어... 의욕이 안나고 있습니다. ㅜ.ㅜ 


개인적으로는 작년부터 다시 일을 나가고, 신경쓸 일이 하나 더 생기는 통에...
요새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겁군요.
변명만 하지말고 뭐라도 그려야 하는데... 하... 이제는 저도 내년에 불혹이다 보니....

하.... 불혹이라....(한숨)





뻘1.

아파서 근 한 달째 치킨도 못먹고 있습니다. 
아픈것보다 이게 더 괴로운거 같습니다.



뻘2.
그런데 다음 달에 양장입을 일이 많아서 차라리 잘됐다 싶습니다. 
조카가 생기거든요. 



뻘3.
틈틈이 만화 그리고 있습니다. 진도는 느리지만 정말이에요. 
진짜 보여주지 못하는 만화를 그리는 생활이 4년째인데 갑갑해 죽겠네요. ㅜ.ㅜ 

애국은 매국의 안티테제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잡다한 일상

1. 
 몇년 전에 다른 곳에 올린 내용이지만 다시금... 

 매국은 확실한 주체와 행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애국은 매국만큼 그 주체와 행위가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지시하는 대상이 '국가'라는데 합의를 한다치더라도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애국인가, 그게 왜 '사랑'이 되는가. 라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완전히 상반된 행위를 놓고서도 "이건 내가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해버리면 그 행위에 대해 판정은 엇갈릴지언정 일단 선의에 기반한 '애국적 행동'이 되어버리거든요.

 반대로 '매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입니다. 언급도 훨씬 잘되고요. 
 그렇기때문에 애국이라는 개념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순간은 "국가에 어떤 행위를 한다"는 본주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매국을 비난하는 순간이 되어 버립니다. 

 매국을 비난하는 순간이 애국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어 버립니다.

 신기하죠.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애국이란 개념은 매국의 반대선상에서 탄생한 개념이 아닐까 하는거요.
 매국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되면서 그 안티테제로서 자리잡은게 아닐까.... 그래요. 적어도 현재까지 한국이라는 사회와 그 역사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져왔고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식민지배와 독립이라는 현재까지는 확고해보이는 기준을 제하고서, 슬금슬금 흔들리는 반공과 안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서, 과연 매국과 애국이라는 단어가 유의미한 사회적 용어로서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 깃발을 제거했을때 과연 사람들은 그 공백을 견뎌낼 수 있을건인가... 
 그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들곤 합니다. 


 하긴... 이렇게 생각하면 "그러면 사랑은 증오의 안티테제냐?"같은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 대상이 매우 가까이있는 느낌도 들고... 
 
 다만 그런 사랑이 예뻐보이냐면 그건 아닌거 같군요. 




2. 
 몇몇 구체적이지 않은 상징화된 개념들이 있습니다.
 선이나 악... 사랑, 평화, 희망... 뭐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애국, 태극기, 자유, 국가, 민족 등...

 현재 언론이라는 것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단어들은 이전보다 더 강한 '좋고 나쁨'의 극단적 성질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언론이라는 것들이 하는 일이라는게 그런 겁니다. 
 A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들이 A단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쁜 것이가 좋은 것인가. 대중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전제를 깝니다. 최종적으로 단어의 가치는 그들이 결정합니다. 그들은 다시 그 단어들을 바탕으로 사회 각각의 단체들을 해석하는 척 합니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해석할 수 있는 절대자들이지요.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대중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지요.





3. 
 어쨌든 그래요. 좋은 단어들이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남발하거나 아예 자신들의 가죽에 뒤집어 씌우는 자들은 고려해봐야 합니다. 
 두텁고 아름다운 화장품을 찾을수록 그 아래에는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소립니다. 심지어 자신을 뭐라하면 그 아름다운 가치를 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요.

 애국, 부모, 어버이, 엄마, 태극기, 자유, 민족, 평등... 에 또 뭐가 또 있냐. 바르게 살기 같은 것도 있던가... 
 
 제가 좋은게 좋은거라는 이야기를 매우 경계하고 혐오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가끔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뭣도 아닌 탓도 있지만 그런 날 밤에는 이불킥을 하곤 합니다.
 
 다만 이 이불킥이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지다가 자기합리화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닐지 걱정입니다.
 저도 내년에는 40. 거울을 보니 진짜 중년이 슬슬 보이네요. 
 일단 뱃살부터 어떻게 해야할텐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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