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할애비가 어릴 적만 해도 말이다..." 역사감상 주절주절

"이 할애비가 어릴 적만 해도 말이다. 내가 아버님과 길에 나서면 다 큰 어른들이 내게 넙죽 고개를 숙이고 했었다."

"왜요? 증조할아버지한테 한게 아니구요?"

"쯧. 그때는 우리 집이 엄청 크고 좋았다. 나가면 눈에 들어오는 땅이란 땅은 다 우리집 땅이었지. 마을 사람들은 우리집에 다 일하러 오는 사람이거나 우리집 밭을 붙여먹는 사람들이었단 말이다. 얼마나 잘 살았는지 곳간에 쌀이 썩어돌 지경이었으니까."

"와~~~(초롱초롱)"

"니 고조 할아버지때는 어땠는 줄 아냐. 그 냥반이 조정에서 큰 일을 맡아서 .... 한 도를 오가며 수령들을 호령하고 하셨단 말이다. 지금 옆 동네 본일이가 돈 좀 번다고 아주 족보를 만들고 유세를 떠는데.... 그거 다 가짜여. 고 쌍놈들이 옛날부터 잘나가는 줄 알았지? 그 때만해도 낑낑거리면서 고기잡다가 우리 집에서 물건도 훔치고 해서 호되게 혼나고 그랬어. 걔네 조상이 그런 쌍것들이여."

"어... 정말요?"


"거기서 더 올라가면 네 10대조 할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하시고도 못된 놈들의 시기에 휘말려서 출세를 못하고 계셨단말이다. 그런데 난리가 난거야. 흠.... 거기서 뭐시냐 탄금대 .... 탄금대 알지? 거기서 적장들의 목을 베고..."

"탄금대면 신립이 싸우다가 죽은데..."

"아 탄금대 아냐? 하여튼 비슷한데 있어. 거 어른 말씀하는데 경청을 못하고 .... 지금 역사 연구라고 하는 것들이 왜놈들 영향으로 눈이 전부 짝눈이 되서 엉망으로 하다보니 사서를 못알아보는데 우리집에 예전이 있던 책에 다 나와있었다. 내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여튼 거기서 적장의 목을 베고 공을 세워 도 하나를 받으셨다 이거야. 온 나라가 난리였지."

".....그...그런 상벌은 책에서 못봤.... 전례도 없...."

"지금 니눈이 짝눈이란 말이다. 짝눈!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 광개토대왕 비문도 왜놈들이 조작한 거라고 하잖냐. 역사가 다~그런 식이야. 진짜 역사는 사라지고 가짜만 판을 쳐. 전례가 없긴 왜 없어! 나라를 구했는데! 여튼 네 조상님들은 어마어마한 땅을 갖고 계셨다. 고을의 어느 누구도 다들 찍소리도 못했어. 나가면 모두 벌벌벌 떨었는데 어찌나 위세가 좋았던지 원님들도 설설기었단다."

"그런데.... 할아버지....."

"어...또 왜 말을 끊어."

"저기.... 그런데 왜 아버지는 소작농 노릇을 하셨던 걸까요...."

"........"

"........"

".......크으...."

"......."

"야 이놈아 진짜로 몰라서 묻냐? 내 이래서 요새 젊은 것들은...... 아~~~~ 그 쌍놈의 본일이 때문 아녀! 고놈이 온갖 나쁜 짓으로 우리 땅을 다 집어먹은거 저번에 얘기 안해줬냐! 정말 생각만 해도.... 니 증조할아버지가 순진했지. 정말 그 딴 놈을 믿고.... 정말 왜 세상은 갑작스레 바뀌어서 .... 저런 놈이 사람행세를 다 하고.... 우리집에 빌어쳐먹던 녀석들인데 아이고~~  "

"뭐.... 그렇네요.... "

"정말 옛날엔 땅 넓었는데.... 넓었는데.... 그 넓은 땅 다 우리꺼였는데.... 니는 꼭 출세해서 저 옆집 놈 콱 쥑여놓고 그 넓은 땅 도로 우리껄로 만들어야 한다."

"....예......."

"그리고 옆집 손자 놈이랑 놀지마라."

"어유 어떻게 옆집인데 아는 척을 안해요. 요샌 다들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 딱히 누굴 믿고 안믿고 가려서 사귈수도 없어요. 그리고 요새는 건넌동네쪽도 수상해서 통교는 해야해요."

"그래도 항상 그런 핏줄은 배신을 때리게 되있어. 그놈 애미애비, 할애비부터 그런 놈들이니까. 여태 얘길 뭘 들은 거냐."

"예예...."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것들에게 왜 옛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하냐. 잘 생각해둬.... 옆집 놈이 어릴 때 얼마나 못배우고 못살았냐 하면 걔네 어머니가 하루는.... ....."

".....ㅜ.ㅜ"





제 할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이야기는 나눠보지도 못......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할아버지일 필요는 없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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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해색주 2010/11/09 17:42 # 답글

    어느 분들과 모습이 겹쳐지는군요. 분신술을 가끔씩 사용하신다는 분들.
  • Jes 2010/11/09 17:43 # 답글

    그렇지만 씁쓸하네요.
  • 이터니아 2010/11/09 17:56 # 답글

    장군님_축지법_쓰신다 와 비슷한 맥락이려나.

    뭐 다들 '왕년에 말이야' 이야기는 하시니까요.
  • 시스 2010/11/09 19:00 # 답글

    두 번째 태그에서 뿜고 갑니다^^
  • 잠본이 2010/11/09 21:52 # 답글

    나이드신 분이라면 몰라도 젊은 사람까지 저런 소릴 하는걸 들으면 아주 혼이 나갈 지경이죠(...)
  • 미니 2010/11/09 22:24 # 답글

    애들이 잘 속아서 탈이죠.
  • 마무리불패신화 2010/11/10 01:02 # 답글

    석탈해를 환빠들과 비교하는건 큰 실례죠.
  • 한단인 2010/11/10 13:04 # 답글

    아..태그에서 격뿜
  • 들꽃향기 2010/11/16 02:14 # 답글

    두번째 태그에 골계의 미학이 있군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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