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히스토리아 - 나는 중들이 싫어요 (7) 날히스토리아

사명당 사실왜곡은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



(해설은 차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1. 정여립은 스승 이이로부터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계입문 후 동인으로 바꾸면서 서인들에게 밉상으로 찍혔던 것이 문제의 발단으로 보임. 가끔 이 사건이 웹상에서 지역감정을 자극시키는 소모적인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했지만... ^^ 

2. 기축옥사 : 호남권 동인 전멸, 결국은 정철(호남)도 토사구팽. 정여립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끌려간 중이 고문중에 휴정의 이름을 토설하여 선종의 우두머리 휴정까지 끌려가게 됨.

3. 관동별곡, 사미인곡의 포인트 :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모두 네게 줄께~~ 예이예~~~~

4. 선조는 재위 초 법당을 다니기도 하였다. 나름 친불성향의 군주였음.

5. 조헌과 영규의 전멸 : 당초 권율과 금산에서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권율이 사정이 생겼다고 알려오고 관군까지 빠진 상태에서 뒤늦게 금산을 빠져나오던 조헌과 영규는 결국 일본군에 전멸. 권율은 이후 벌어진 이치전투에서 승전.   (오류 수정합니다. 조헌은 이치전투 이후인 2차 금산전투 이후 사망하는군요.http://ko.wikipedia.org/wiki/%EA%B8%88%EC%82%B0_%EC%A0%84%ED%88%AC 제보 감사드려요.^^)

6. 노부나가의 학살 : 그래서 물건너 게임에서는 마왕으로 자주 나오는 몸. 일향종에 한정된 공격이긴 했지만.

7. 잘못된 정보 : 광해군 2년 1611년 11월 기사를 보면 유정이 일본통으로 알려진 것은 일본과 서신교환을 자주하였던 스승 휴정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8. 서양마귀 : 1군을 이끌고 한양에 입성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실은 당시 중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것 같다. ^^ 

9. 누구 : 세종이다. 과연 명군....이라고 하고싶지만 일단 그것까지 하라는 대로 당했다면 세종치세는 정말로 백성들의 지옥이었을지도.




그리고 이어서 그립니다. 
다음도 날히스토리아에요. ^^ (게임만화 기다리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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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리 2011/09/09 12:49 #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 레드칼리프 2011/09/09 13:22 #

    감사합니다. ^^
  • 엘레나시아 2011/09/09 13:09 # 답글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이 아니라! 정여립이다!!!!!
  • 레드칼리프 2011/09/09 13:23 #

    아.... 경기도 출신 몇 있었는데 깜박했네요. 조헌도 경기도인데. ㅡ.ㅡ 그 쪽으로 할걸....
  • 누군가의친구 2011/09/09 13:14 # 답글

    5. 그런데 지적하자면 조헌, 영규의 의병에 의한 전투는 2차 금산전투로 고경명의 의병에 의한 1차 금산전투 이후에 있었죠. 사실 이치전투가 7월 8일, 2차 금산전투는 8월에 있었습니다.
    1차 금산 전투의 경우 7월 9일 금산에 도착 7월 10일쯤에 있었는데 당시에도 관군의 소극적 태도와 이로 인한 패퇴가 패배의 원인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치와 웅치에서 전투가 벌어져 왜군 주력이 웅치에서 이기나 고경명의 의병이 금산을 공격한 여파로 퇴각하여 결과적으로 전라도 공략은 실패하였죠.

    PS: 당시 승병들도 살생을 금하라는 것때문에 참전에는 나름 고민은 있었지 말입니다.
  • 레드칼리프 2011/09/09 13:22 #

    케엑!!!! 감사합니다. 확인 후 문제가 된 내용은 삭제하겠습니다. 청주 전투 -> 금산 전투 인줄 알았는데 2차 전투가 있었군요 ㅜ.ㅜ 아이구. 더 공부해야겠네요.
  • 明智光秀 2011/09/09 14:29 # 답글

    노부나가 사마의 종교정책은...
    광신도 일향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통일사업에 방해되면 박해. ^^;;;
    (키요마사가 신심 싶었던 법화종도, 노부나가를 비롯한 기존 영주들은 뷁스러워 했던 ^^)

    정작, 장인어른 도산과 대면한 이벤트로 유명한 정덕사도... 일향종 사원도시. ^^;;;

    암튼...
    재밌게 잘 봤습니다.
    언제나 통쾌한 역사의 일침!! (똥침이 더 적절한 표현이려나요... ^^;;;)
  • 레드칼리프 2011/09/09 20:01 #

    어이쿠 아케치님이 왕림해 주셨네요. ^^
    노부나가는 그런 이미지죠. 딱히 불교를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해요. 서양문물에 흥미가 있었을 뿐이지 기독교에는 심드렁했고.
  • Jes 2011/09/09 15:05 # 답글

    1. 정여립은 단지 동인으로 적(籍)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언사를 동원해 율곡 이이를 공격한 바 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정여립에 관심이 많은데 그에 관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재야사학자(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닙니다만) 한 분이 쓰신 책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 레드칼리프 2011/09/09 20:18 #

    당대에 당적을 바꾸는 일은 권장되지는 않았어도 아주 드문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데. 군사부일체의 사회에서 스승 디스후 당적 변경은 확실히 욕먹기 딱 좋은 일이라.

    왠지 그 분 책 읽은 것 같습니다. 광주지역 사학자시죠? 호남과 지역차별의 관점에서 접근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 Jes 2011/09/09 23:26 #

    예, 신정일 선생님 맞습니다.
  • 레드칼리프 2011/09/10 10:01 #

    그렇군요. 아마도 도서관에서 읽었겠지요. ^^ 성함은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여립과 율곡의 관계는 만화에서 정철이 말한 "내 친구 율곡을 배신한 정여립"이란 대사로 됐겠거니 생각했는데 루리웹 쪽도 그렇고 이 곳도 그렇고 양쪽에서 다 지적당했네요. 아아 ㅜ.ㅜ 정말 만화의 길은 멀어요.
  • 엽기당주 2011/09/09 15:16 # 답글

    맨 마지막 컷에서 못볼것을 본듯한....

    암튼 서양에도 십자군 전쟁시에 피는 보기 싫다고 철갑을 두르고 메이스로 아랍인들에게 프랑스식 고기 다지는 법을 알려주신 전투승려들이 있었듯이.. 동양권에도 종교집단이 무력집단화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중앙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봉건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100% 중앙집권을 못했던 동양의 통치조직 하에서 종교집단은 쉽게 무력집단화 했었죠. 일본도 노부나가가 일향종도를 쓸어버린 이유중 하나가 얘들이 그냥 주먹좀 쓰는 스님들 모아놓고 지역에서 행패부리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전투승을 주축으로한 군사조직이 되어있다보니 다이묘들까지 쳐발리는 실정이었기 때문이죠.

    왠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시기아 동서양에서 천주교 신부님들이 철갑입고 말타고 철퇴를 휘두르거나 일본땅에선 스님들이 나기나타 들고 사무라이 썰고 계시고...우리나라는 쳐들어온 왜군들에게 계도맛을 보여주는 등..종교계 무력집단의 활약이 두드러지는것 같습니다.

    요새는 종교가 무력집단이 아닌 경제적인 집단이 되어서 빈축을 사곤 합니다만.. 종교자체는 비세속적이나 종교가 조직이 되면 속세에 반은 발을 걸치는지라...

    고대에는 정치집단화, 중세에는 정치/무력집단화, 현대에는 경제집단화(간혹 정치에 끼어들려는 시도가 보이나 성공확률이 낮은 뻘짓..)하는걸 보면 이쪽을 찬찬히 살펴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 레드칼리프 2011/09/09 20:27 #

    옛날 D&D 룰에 몽크나 클레릭은 베는 무기가 허용되지 않던게 떠오르네요. ㅡ.ㅡ 피를 보지 않기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첨 알았네요.

    경제집단이라.... 돈이 칼이나 총보다 더 무서우니까요. ;;; 현명한 선택이죠. 확실히 이 변화는 재미있긴 한데. 아..... 제가 할 깜냥이 안되죠. 언제는 되서 했겠습니까만은. 이 쪽은 ;;;; 자료를 수용할 능력이 부족한 작가라.
  • 티무르 2011/09/09 15:43 # 답글

    오오 마왕 오다 오오
  • 레드칼리프 2011/09/09 20:27 #

    제육천마왕. ^^
  • 나르사스 2011/09/09 16:07 # 답글

    사실 세종치세를 보면 북방정책에 수령고발금지등으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많이 성군으로 알고 계시지요. 재미있는 만화 잘 읽었습니다.
  • Jes 2011/09/09 16:47 #

    부민고소금지법이 "세종의 환상을 깨는 사실"이라는 명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세종 대까지 건재하던 지방 호족을 견제하기 위한 법령입니다...;;;
  • asianote 2011/09/09 16:51 #

    세종치세가 딱히 다른 시절보다 압도적으로 백성들에게 살기 좋았던 시대는 아닙니다만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하시면 곤란하다 봅니다. 당대 실록에도 해동요순 시절이라는 구절도 있고요. 북방정책은 사실 지금봐도 합리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던 것으로 봅니다. 압록강, 두만강을 방어선으로 구축하면 그나마 저 북방민족을 막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니까요. 저기 고려에서도 강동6주를 얻었기 때문에 대요전쟁에서 상당한 이점을 얻은 사실도 있습니다. 다만 사민정책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정도 손실이 차라리 북방이 어지러운 것보다 나았을 거리라 봅니다. 수령고발금지법도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 싶지만 당대 수령을 고발할 정도의 백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수령을 고발하려면 가까이는 관찰사 있는 지역으로 가야 하고 멀리 한양까지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지요. 수령을 주로 고발하던 사람들이 저기 지방에서 꽤나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세종대왕의 진정한 실책이라면 무리한 화폐경제 도입 시도를 비판하셔야 할 겁니다. 당대 화폐경제가 확립될만한 상업능력이 없음에도 무리하게 강행하려다 물가는 폭등했고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사례가 많았지요.
  • 레드칼리프 2011/09/09 20:32 #

    음.... 막 나오네요. 부민고소금지법에서 깨긴 깨죠. ㅡ.ㅡ 그 기사가 나오게 된 것도 세종이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서 당황들 한거구요. 현대의 윤리를 자꾸 과거에 적용시키니 생기는 오해. 그러고보니 책은 사지고 팔지도 말라던 건 세종이었나 정조였나. 기억으론 세종같은데요.
  • asianote 2011/09/09 16:53 # 답글

    흠. 휴정대사가 일본 불교측과 교류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네요. 혹시 참고할 만한 출전이라도?
  • 레드칼리프 2011/09/09 19:58 #

    광해 35권, 2년(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11월 12일(계축) 4번째기사
    ....실록의 그 부분입니다만 실은 이것도 사관이 정확하게 알고 이야기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길래 그런가 하고 있지요. 실은 유정을 폄하하기 위해 예전에 죽은 스승을 들먹이는 걸지도 모릅니다. "일본에 보내는데 유정만한 인물이 없다." "중을 어디까지 쓸거냐"로 감정다툼이 있던 시기거든요.
  • 격화 2011/09/09 18:05 # 답글

    불살 캐릭터!

    아웅, 패러디가 나날히 발전하시는 군요!
  • 레드칼리프 2011/09/09 20:33 #

    패러디..... 원래 이번 화는 패러디 없이 가다가 마지막에 추가했습니다. 너무 없으니 허전해서.
    지금보니 그냥 프리덤 그대로 그려놓을걸 그랬다 싶네요.
  • 몽상이 2011/09/09 22:37 # 삭제 답글

    ㅋㅋㅋㅋ 역시 최고입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임진왜란에서 승병이 출전을 한 이유가 단순히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호국불교의 성격만을 가지고 불심보다는 충의 의미가 커서 그런줄 알았는데 이게 아니었군요. ㅎㅎ 나름 비지니스적인 모습... 그리고 송강 정철... 희대의 아부꾼 중 하나죠. ㅋㅋ
  • 레드칼리프 2011/09/10 10:06 #

    충 > 불심으로 본 것이 맞습니다. ... 저 정말 만화 잘못짠듯요. ;;; 다만 이 충이 원래 있던 것이라기보다 "학습된 것"으로 봤어요. 그리고 일본의 사정건은 현실적인 사정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뭐 그런 생각에서 해본 거랍니다.
    ...장고 끝에 악수네요. 음.. 저는 정철에 대해 평가보류하렵니다. 율곡이 말한 "지나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맘에 걸려서요. ^^
  • BB 2011/09/10 18:27 # 삭제 답글

    근데 기축옥사 때 천, 이천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긴 한가요? 워낙에 잘 알려진 말이긴 한데 정작 거기에는 출처가 없던데요. 왠만한 기록들은 이발 등 죽은 몇 명에만 집중하고 있고 수정실록에도 수백명, 연루자가 수백에서 천 명 정도라면 과장으로 받아들이겠지만요. 정작 많이 인용되는 정약용의 동사록이었나는 죽은 사람 53명에 연루자 400명이라고 돼 있는 수준인데요.
  • 레드칼리프 2011/09/10 21:56 #

    우웃.... 그렇게 말씀하시면 딱히 반박은 못하겠네요. ㅡ.ㅡ ;;; 이발의 일가, 치죄과정에서 별 웃기는 일로 끌려간 사람들, 승려들, 정여립 친우들... 해도 확실은 '천'은 무리인것 같은....

    ...말씀듣고나서 일단 검색을 해봤는데 .... 결국은 1차 사료를 못찾았습니다. 영감들 과장에 낚였나 싶기도 하네요. 동인일파가 서인들에게 밀려난 이후로 뻥이 좀 있었으니. (그와는 별개로 정약용의 경우를 믿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여튼 천 명은 충분한 고려가 부족한 수치였습니다.
  • BB 2011/09/11 16:00 # 삭제 답글

    웃 이거 하나 때문에 너무 까칠하게 써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__); 요새 이 문제에 관심 가져서 찾아다니는 중이었는데, [천 명 충분히 된다. 호남은 그 때부터 차별 받은 거다]는 식의 반박에 너무 부딪혀서 신경질적이 돼 버렸네요. =_=; 저도 호남 피 흐르는 사람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저도 아무리 찾아봐도 1차 사료를 못 찾았습니다. 수정실록에 오히려 수백명이라는 숫자가 있는 걸로 봐서 왠지 서인이 "저거 다 정철 잘못이다"라면서 죄를 다 넘겨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구요. 역모가 신나게 커진 거니까 연루자가 수백에서 천 명 정도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죽은 사람이 그 정도라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근데 기축옥사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다루거나 하는 책에서도 다른 건 신나게 출처 명시하며 파고드는데 "죽은 사람 천 명!"은 자극적이라서 그런지 확인도 안 하고 무조건 넣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 정도고 (__); 첫 댓글을 너무 까칠하게 달았지만; 계속 보고 있던 광팬입니다. 앞으로도 유익하고 재밌는 만화 기대하겠습니다.
  • 레드칼리프 2011/09/13 07:12 #

    아닙니다. ^^ 덕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종종 자극적인 수치가 발견되면 검증없이 넣어버리는 일을 저지릅니다. 문제는 저질러 놓고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도 있기때문에 이런 지적은 좋은 일이죠.
  • 착선 2011/09/13 20:50 # 답글

    왠지 의병보단 승병이 이미지가 더 강한 느낌이 듭니다. 어렸을때 본 소림사 영화들 때문인가..
  • 레드칼리프 2011/09/15 15:49 #

    이름도 '항마군'. 뭔가 폼나잖아요? 주특기가 반(半)공병이지만.
  • 초효 2011/09/13 22:24 # 답글

    저렇게 열심히 싸웠더니 나중엔 군바리 대타 취급을...
  • 레드칼리프 2011/09/15 15:50 #

    조선이 망하는 순간까지 중들이 하는 일들은 참으로 다양했다고 하더라구요.^^
  • 놀이왕 2011/09/17 17:28 # 답글

    안녕하세요. 자주 찾아왔지만 글을 남기는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우연찮게 레드칼리프님의 이글루를 발견, 역사 만화들을 재밌게 봐온 사람입니다. 다른 만화 가운데서 저는 김정호 대동여지도 만화와 게임 만화인 왜 하필 새턴이었을까 이 두개를 재밌게 봤고요.... 그리고 저 만화를 보니 어린시절 고전만화로 읽었던 사명당 얘기가 떠오르네요. 임진왜란 이후 또다시 전쟁준비를 하려던 일본에 사신으로 찾아가 일본 천황으로부터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도 받아낸 내용이었죠..
  • 레드칼리프 2011/09/19 16:49 #

    감사합니다^^ ......천황 서명이야기는 첨듣네요. ;;; 저도 어린시절 학습만화를 많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저희때는 그런게 거의 없어서 ;; 윤관, 강감찬 관련 만화로 보고 멋대로 이미지를 그렸던 기억이 나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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